1945년 광복과 함께 시작된 미군정과 1950년 한국전쟁의 미군참전을 계기로 우리나라 의료와 의학교육 제도는 미국 방식을 따르게 되었다. 1946년 10월 서울에 모범보건소가 설치되면서 공중보건사업이 시작되었다. 조선총독부 하의 공공병원은 대한민국정부에 귀속되었고 지방의 도립병원도 지방행정부의 시ㆍ도립병원으로 되었으나 재정과 의사 부족 시설의 노후화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다. 1958년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의 원조로 서울에 약 250병상의 국립의료원이 설립되었고 모범적 병원관리를 통해 우리 병원의 진료수준 향상에 좋은 자극이 되었다.
광복 후 선교병원들은 병원의료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1950년대 부산의 복음병원 위생병원 침례병원과 인천기독병원 원주기독병원 등이 지방의 공익병원으로 기능하였다. 1954년 카톨릭성신대학 의학부의 설치는 카톨릭계가 의료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전국에 15개의 병원을 설립하였다. 민간병원은 양적 질적으로 크게 발전하여 당시의 부진했던 병원의료를 보완하였다. 1952년에 도입되어 195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문의제도를 통해 배출된 많은 전문의사는 개인의원을 개설하거나 30~50병상 규모의 병원으로 확장하였다. 1970년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의료수요를 공공병원과 선교병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져 민간병원의 신설이 줄을 잇게 되었고 이후 민간병원 중심의 의료체제로 전개되었다.
의학교육제도는 미군정이 조직한 조선교육위원회의 종합대학안에 따라 1946년 8월 경성제국대학교 의학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통합한 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설립되었으며 세브란스의학교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대구의학전문학교 광주의학전문학교도 6년제 의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 1958년에는 수련의제도가 도입되었다.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1953년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1954년 카톨릭의대 의과대학 1968년 조선대학교 의과대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1979년 인제의과대학 등 각 도에 1개 이상의 많은 의과대학이 설립되었고 소속병원들의 개편이 시행되었다.
1968년 장기려(張起呂: 1911~1995)가 청십자운동(靑十字運動)을 전개하면서 시작된 의료보험제도는 1977년 사회보장형 의료보험을 도입 확대하게 되었으며 1989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장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